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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위만(衛滿)의 멸망(滅亡)과 대한무제(對漢武帝) 전쟁(戰爭)

"부여사"와 "부여 백제"의 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내용 중 일부를
대쥬신제국사(1993년 동아출판사刊)에서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회화작품과 역사적 사실이 함께 어우러진 부여사, 부여 백제(발간예정)와는 다른 대화체 형태이고
방대한 기간(한민족의 시원~조선)을 다룬 관계로 대략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 올려지는 이미지 자료는 곧 발간될 부여사와 부여 백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위만 쥬신[衛滿朝鮮] 제3대 우거왕(右渠王)은 이미 낙랑국에 조공을 바치며 제후국의 위치를 자처함으로써 선조 위만의 잘못을 용서받고 있었다.
한편, 중화의 열국들을 완전히 통일하고 이제 안정권에 들어선 한 무제(漢武帝) 유철(劉徹)은 동아(東亞)의 패권을 건 한 판 승부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쥬신제국의 소번국(小蕃國) 위만조(衛滿朝)를 그 첫 번째 희생물로 생각하고, 섭하(涉河)를 님성으로 파견하였다.

“한 무제의 특명을 받고 온 대사(大使)섭하이옵니다. 대왕의 선제 위만왕은 연나라의 정승으로, 이 곳에 쥬신[朝鮮]을 세웠으므로 결국 님성쥬신은 연나라의 상국인 한나라의 번국(蕃國)인 셈인데, 아직 신례(臣禮)가 없으니 어찌 된 일이오니까?
답서를 받아 오라는 천자의 명령이오.”

“그게 무슨 경우 없는 소리요? 선제 위만께서 비록 연나라의 벼슬에 있었으나 원래가 쥬신 사람인 줄 모르셨소?”

“우리 이 님성쥬신[壬儉城朝鮮]은 이미 중앙의 부여 정부(夫餘政府)에게 승인을 받았고, 지금은 이웃 낙랑(樂浪)의 번국으로 있는바 중화의 한나라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중원을 통일한 한 무제의 권위가 완전히 무시당한 채, 님성을 쫓겨나오다시피한 섭하는 마침 정무 보고차 님성에 왔다가 공지(空地)로 되돌아가는 비왕(裨王)의 호위를 받으며 끌려가다시피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엔 이미 이 모욕에 대한 분을 풀 음모가 싹트기 시작했으니….

그들이 공지에 도착하여 패수를 건너 연경으로 되돌아가려는 순간, 갑자기 섭하의 졸개가 칼을 뽑아 비왕을 찔러 죽였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비왕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일을 당하고 말았다.

“아 아니, 이런 변이! 대왕, 정신 차리십시오. 대 왕!
“쏘아…죽여라!”

비왕의 부하들이 섭하의 뒤를 급히 추격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강 건너에 미리부터 잠복해 있던 섭하의 부하들이 어지러이 화살을 날려 도망해 오는 섭하 일행을 보호하였다.

“한(漢)의 병졸들이다!”

비겁하게 송별 나온 비왕을 죽인 섭하는 그 길로 즉시 한 무제에게 보고하길, 자신이 쥬신의 비왕을 죽였다고 자랑하였다. 한 무제는 그에게 요동도위(遼東都尉)라는 벼슬을 주어 공지의 관리를 맡겼다. 사실 공지란, 천왕랑 해모수 단군이 연나라와 맺은 국경 조약에 의해 서로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양측이 모두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남겨 둔 것이었다. 그것이 위만을 필두로 중국에서 피난해 오는 쥬신인들의 지역으로 변했는데, 이제 한 무제가 이 땅의 연고권을 주장하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비왕의 피살을 지켜본 선주민(先主民)들은 부임하는 섭하와 그의 한병(漢兵)들을 갈로산 계곡에 매복하였다가 공격하여 몰살시키고 말았다.
일이 이에 이르자, 한 무제는 그 책임을 님성의 우거왕(右渠王)에게 돌리고,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에게 해군 7천 명, 우장군(右將軍) 순체(荀?)에게 육군 5만 명을 주어 수륙 합동 작전으로 기어코 위만쥬신의 최후를 보고자 하였다.
일이 급하게 되자, 님성의 우거왕(右渠王)은 종주국인 낙랑에 구원을 요청했고, 제후국을 보호할 의무를 가진 낙랑(樂浪)은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는 낙랑해군을 파견하여님성 앞에서 지키다가 몰려오는 한(漢)의 군선을 역습하였다.

이미 수천 년 동안 물가에 자리 잡고 물과 함께 살아온 동이족의 선진적인 항해술 앞에, 이제 겨우 내륙 지방을 벗어나 바다에 눈을 뜨기 시작한 한나라의 수군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낙랑 해군은 한나라의 군선(軍船)들을 반나절도 못 되는 사이에 모두 격침시켜 버렸다.

멀리 님성에서 이 해전을 바라보던 우거왕은 낙랑 해군의 일방적인 대승을 바라보며 종주국 낙랑의 실력에 몸서리쳤다.

“옛날 청구(靑丘) 시절부터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동이족이라 역시 바다에선 중국인들이 상대도 되지 않는 구나. 과연 낙랑 해군은 천하무적이로다.”

“해전에서는 승리하였지만, 진짜 걱정은 순체의 육군 5만이다. 어쩔 수가 없으니, 해부루 천황께 살려 달라고 매달려 볼 수밖에 없다.”

어느덧 우장군 순체의 한나라 군사가 패수를 건너 쥬신인의 지역으로 침입해왔는데도, 겁에 질린 우거는 성문을 굳게 닫고, 협(峽), 음(陰), 참(參) 3장군을 소집하여 작전 회의만 열고 있었다.

“아무리 한군(漢軍)의 수가 많다고 해도 짓밟히고 있는 쥬신 백성을 두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소장 협에게 5천 병사가 있으니, 나가 싸우게 해 주시옵소서.”

“하지만, 적병은 무려 5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구원군이 올 때까지 님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 최상책이다. 그까짓 백성들 몇 명쯤 다치는 건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대왕의 생각은 비겁하기만 하오! 며칠 전 한 수군(漢水軍)도 낙랑 해군이 격멸시켰고, 우리는 성 위에서 구경만 했소. 죽어 가는 백성들을 버려두고 우리만 살려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소이다. 이 협 혼자서라도 백성들을 구하러 가겠소.”

“협은 짐을 반역할 셈인가? 무엇들 하느냐? 음, 참 장군은 어서 협을 죽여라!”

“협 장군의 말씀이 옳소이다. 백성들을 버린 우거왕이야말로 왕의 자격이 없소. 미안하지만, 백성들을 위하여 죽어 줘야겠소.”

백성을 버린 비겁한 왕은 정의감에 피끓는 3명의 장군에게 죽고 말았으니, 위만쥬신은 연나라의 쥬신 교포 위만이 흉노군을 이끌고 모국의 님성을 탈취하여 세운 지 겨우 86년, 제3대 우거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비굴한 왕을 죽여 위만쥬신의 명맥을 끊어 놓은 3장군은 병(兵)을 인솔하고 님성을 출발하여 침략군들의 발밑에 짓밟히고 있는 패수의 쥬신 백성들을 구하러 달려갔다.

그러나 그들 앞에 상장(上將) 성기(城己)가 우거의 복수를 위하여 길을 막으니, 분개한 세 장군은 단번에 성기도 쳐죽였다.
때마침 한 무제의 침입을 막고자 달려오던 낙랑의 장군 최(最)의 군단을 수하에 편입시켜 연합군을 편성한 고두막 칸[高豆莫汗 혹은 高豆莫婁汗]은 비굴한 왕을 죽이고 전선으로 향하던 협, 음, 참의 5천 결사대를 만났다.

“먼 길에 수고가 많사옵니다.
고두막 칸이시여!
저희들도 한의 군단에 편입시켜 주옵소서.”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그대들은 이 곳의 지형을 잘 알고 있으니 그대들 3장군을 천황군의 선봉으로 삼으리라. 자, 어서 가서 한구(漢寇)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

고두막 칸은 고구려 후(侯 : 왕)로서 동명왕(東明王) 고진(高辰)의 손자이며, 서압록(西鴨綠) 이북이 그의 영지였다. 만약 위만 쥬신 땅을 빼앗기면, 그 다음은 가우리와 한(漢)의 직접 충돌이 불가피하므로 전략상 한 무제군을 이 곳에서 막으려고 생각한 것이다.

고두막 칸이 인솔하는 천황군은 난하까지 진출한 한군과 3주야에 걸친 혈전 끝에 힘겹게 승리를 거두고, 한군을 다시 서쪽으로 쫓아 보냈다.

이리하여 동방 원정에 실패한 한 무제 유철(劉徹)은 원정에서 실패하고 되돌아온 누선장군 양복, 우장군 순체, 사신(使臣)인 위산(衛山) 그리고 참모 공손수(公孫遂) 등을 모두 기시형(棄市刑 : 죄인의 목을 베고, 그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는 형벌)이라는 극형에 처하고, 전쟁에서 지고 온 것을 대단히 분해하였다고 한다.

한무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고두막 칸은 위만쥬신의 영지를 쪼개어 그 대부분은 낙랑에 편입시키고,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네 장군들에게도 상을 내렸다.
협 장군은 평주(平州) 땅을 주어 임둔(臨屯)왕에 봉하니, 임둔이란 대방국(帶方國)의 별명이다.
참 장군은 현부(玄部)의 욕살로 승진하여 홰청의 왕으로 봉하니, 즉 현도(玄?)이다.
음 장군은 추저 땅을 주어 왕으로 봉하였다. 이 곳은 이른바 공지로서 신쥬신[辰(眞)朝鮮]과 불쥬신[卞(番)朝鮮]의 옛 영지이니, 진번(眞番)이라 하였다.
그리고 최 장군은 날양(捏陽)의 왕으로 봉하고, 낙랑(樂浪)의 대장군으로 승진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한 무제가 정복한 곳에 두었다고 중국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한사군의 정체이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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