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42
삼국사기 기록들은 사실입니다.
나당과의 관계 그리고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등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답니다.
이를 자세히 볼려면 신라의 형성과 또 연과 고구려의 충돌. 그리고 신라 왕조를 공부하면 내면의 문제를쉽게 풀수있습니다.
역사는 나타아 있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글자 자간사이의 내용이 무척 중요합니다.
나타나있는 현상과 그뒤에 숨어 있는 진실 말입니다.
한민족사를 보면 극도로 한심한 부부이 많슴니다.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기위해 나를를 팔아먹는 사대주의자들의 행동은 무지막했으니까요.
전에 밝혔지만 우리 한민족사는 우리민족 특히 유학자들이 뻐받는 [공자]로부터 역사의 왜곡이 이루어졌습니다.
공자이 춘추가 바로 사만천 사기의 바탕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선조들 중에는 이를 신처럼 떻받이고 이씨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우리의 역사는 반 토막이의 역사로 왜곡되었다고 봅니다.
나라가 싫다고 떠나는 사람 잡을 필요없다고 봅니다.
지금 떠나지만 외국에 나가면 고국이 얼마나 소중한것인가를 깨닭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스스로 지켜가야 하고 사대주의자들의 의도에 빠지지않는 의지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어느분이 쓴글인데...그당시 사대주의의 극치를 보는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시대에도 우리에겐 그 치졸한 역사가 살아 있슴을 봅니다. 아마도 이런 전통이 면면히 그들의 피속에 아니 골수에 흐르는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정 삼국사기에 저런 기록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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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보면 신라는 신라왕이 인정한 비천한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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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보면 우리민족을 배신한 신라가 당황제의 편지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고 무릅을 꿇고 황제의 신하로 경건하게 편지를 받으오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비천한 신라를 생각해주시니 감사하다고 신하로서 비천한 황제의 땅(신라)에서 황제에게 충성을 다받치겠다고 말하죠. 이런 기록이 자주나오죠. 진짜 변방은 신라가 아닌지. 어디서 고구려나 백제같은 나라가 변방국이라.... 말같지도 않은 소리 작작하시죠. 당의 입장에서야
>고구려가 변방이었지만 우리민족의 입장에선 신라와 백제가 태왕이라 칭하며 한민족의 중심국가로 인정했던 나라입니다. 지금의 신라인도 북방 알타이민족에서 남하하여 나라를 이룬 고조선과 부여의 자식이거늘 자신의 뿌리이자 한민족의 자랑스런 역사를 변방의 역사라 칭하다니... 성씨로는 신라의 왕의 자손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아시아를 호령하
>던 자랑스러운 북방민족의 후손으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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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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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년 신라는 자신의 왕으로 섬긴 당황제에게 여름 4월에 조공을 받치는 사신을 보내 말 한 필과 우황, 인삼, 술, 바다표범 가죽, 금은 등을 바치며 신라 사신은 사지를 떨면서 말을 했다.
>
>『신(臣)의 땅은 바다 구석진 데 있고 땅은 먼 모퉁이에 처하여, 본래부터 천주 상인의 진귀한 보배도 없고 남만인의 공물과 같은 재화도 없어서, 감히 토산물로써 황제의 관청을 더럽히고 노둔한 말로써 황제의 마구간을 더럽히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매우 부끄럽게 여겨져 떨리고 땀이 날뿐입니다.』 - 삼국사기
>
>참조문 2
>
>신라는 초기 고구려의 신하국이었다. 그러기에 광개토대왕은 신라의 구원요청에 5만의 군사를 신라에 보내었다. 여기서 고구려의 신하국이었다해도 신라를 바라볼때 결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같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였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 국가사이에 어느 한쪽에 의지하거나 따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인에게 신하의 맹세를 하고 진덕여왕이 직접 중국왕에게 황제
>의 은덕을 감사하는 예를 표시함에서 더 나가 중국의 한 지방 자치 속국임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신라는 당황제를 왕으로 모시고 왕이라 칭하던 호칭을 포기하고 당의 벼슬을 받아 신라를 다스리기 시작했고 진덕여왕은 태평송을 중국왕에게 받치고 독자적 연호를 없애고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서기650년 한민족의 한 국가를 대표했던 진덕여왕이 직접 써 받친 태평송을 한번 보자.
>
>"거룩한 당나라가 왕업을 창업하니 황제의 경륜은 높고도 크시구나. 전쟁을 끝내어 천하를 평정하고 선대왕들을 이어받아 문교를 닦으셨네. 하늘을 대신한 은혜도 장하시고 천하만물을 다스리니 저마다 빛을 낸다. 끝없이 어진 덕은 해와 달에 어울리고 운수를 어루만져 해마다 태평이네. 깃발은 어이 저리 빛나게 나부끼고 징소리 북소리는 어이 저리 우렁찬가. 황제의 명을 어기는 바깥 오랑캐는 단칼에 베어져 천벌을 받으리라. 밝고 어두운
>데 없이 풍속은 순박하고 여기저기 다투어 축하를 바친다. 사철은 옥촉같이 화합하고 해와 달과 오성이 만방을 두루 돈다. 산악의 기운 바아 어진 재상 태어나고 황제는 어질고 충성스런 신하만 믿으시네.3황5제의 덕이 하나같이 뭉치어 우리 당나라를 길이길이 비추
>리라."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덕여왕편>
>
>참조문 3 - 신라가 당에 한민족을 팔아먹은 기록
>
>삼국사기를 보면 문무왕때 벌어진 나당(?)전쟁 당시 문무왕이 전쟁을 벌인 상대는 당나라의 하수인인 웅진도독부여(일제시대 만주국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임을 알수 있다. 삼국사기 문무왕편을 보면 당나라총관 설인귀가 이웃나라(웅진도독부)와 우호 관계를 깨고있다고 신라 문무왕에게 서찰을 보내자 문무왕이 답장에 말하길 "선대 임금이 당태종 황제때 입조하여 황제의 조칙을 직접 받았는데 그때 명하길 '내가 두 나라(고구려,백제)를 평
>정하면 평양 이남 백제의 땅을 전부 너희 신라에게 주어 길이 편안토록 하겠다'라고 하였
>다."라 답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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