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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121

<고구려유적 답사> ② 개발에 짓눌린 고분군
작성자 :
다물넷  (IP :112.156.180.104)
적성일 :
2010-02-04
조회수 :
2953


  

훼손 극심 고구려 고분
(환런<중국>=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고구려 초기 도읍지인 중국 랴오닝성 환런에 있는 고구려 초기 고분군인 상고자고분군(上古子古墳群). 유적 안내판에 훼손되었는가 하면 인근에는 공장이 있고, 전봇대와 전깃줄이 지나간다. 2010.1.26 << 문화부 기사참조 >>
taeshik@yna.co.kr

초기 도읍지 환런 유적 곳곳 신음

(환런=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답사 이틀째인 지난 21일 단둥(丹東)을 떠난 답사단은 빙판길을 달려 이날 해 질 무렵 고구려 초기 도읍지로 알려진 환런(桓仁)에 도착했다. 우리의 읍 소재지 정도에 해당하는 이 작은 지방도시에 들어가는 길에 고구려 초기 무덤 떼로 알려진 상고자고분군(上古子古墳群)에 잠깐 들른 것이다.

   이미 해가 넘어간 까닭에 무덤의 분포 양상조차 알아보기 힘들기는 했지만,어둠 속에서도 2천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고구려 사람들이 곤욕을 치른다는 느낌이었다. 무덤군 바로 옆에는 공장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전봇대가 유적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가 하면, 고분군 위로는 숱하게 전깃줄이 지나갔다.

   이튿날 동이 틀 무렵 이곳을 다시 찾았더니, 광경은 더욱 처참했다. 유적지를 안내하는 판조차 훼손됐고, 그 바로 인접 지점 공장은 간판을 보니 특수철강을 제조하는 곳이었다.

   답사반 도착에 맞췄는지, 이 공장 굴뚝에서는 갑자기 시꺼먼 매연을 뿜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고분군 위를 덮쳤다. 아마도 공장을 돌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이 상고자고분군에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모두 200여 기에 달하는 고분이 있었다고 하지만, 중국 문화대혁명의 회오리는 이곳도 가만두지 않았다. 이때 진행된 농지 개간 사업으로 지금은 대략 20기 안팎의 무덤이 올망졸망 남아있다.

   이들 현존하는 무덤은 형식으로 보면 대부분 적석총(積石塚), 즉, 돌무지로 사각형으로 쌓아올린 것이었다. 이전에 몇 군데 발굴조사가 진행된 듯, 이들 무덤 안에서는 석곽(石槨)이 확인됐으며, 따라서 이곳은 대체로 3세기 이전에 조성한 고분으로 생각된다고 인솔자인 복기대 박사가 설명했다.

   2004년 중국 정부는 환런과 지안 일대 고구려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두 지역 고구려 유산에 대한 유적 정비를 단행하고, 그 일환으로 이곳 상고자고분군 또한 일정 부분 보수와 정비를 단행했다고 하지만, 전봇대를 치우진 못했고, 공장을 옮기지도 않았다. 아마도 본격적인 유적 정비에는 상당한 시일과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사정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1.5㎞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하고성자성(下古城子城)이라는 고구려시대 초기 유적지로 생각되는 성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곳이 옛 성터임을 알려주는 것이라고는 오직 유적 안내판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터라고 하는 곳을 대강 둘러보니, 성벽 안쪽에는 우리의 70년대 풍경과 흡사한 농촌 민가가 들어앉아 있었다.

   이 동네 어디에 성벽이 남아있다는 말인가? 물어물어 한 농가 마당을 지나고 뒤로 돌아가니, 움푹 팬 땅이 완연히 경계를 형성한 드넓은 밭에 들어섰다. 밭과 한 농가 건물이 경계를 이룬 지점이 어딘지 모르게 성벽 흔적 같다 생각했더니, 그곳을 가리키며 복기대 박사가 이곳 서북벽 일대가 유일하게 현재 볼 수 있는 성벽 흔적이란다.

   성벽 위를 따라 민가가 들어서 있다. 희미하게 남은 성벽을 자세히 살펴보니, 흙으로 쌓은 토성이다. 어딘가 절단면이 발견된다면, 그 축성법까지 들여다볼 수 있겠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이전에 청동기시대 이래 고구려, 요, 금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층의 유물이 출토됐다고 하며, 더구나 그 인근에 먼저 들른 상고자고분군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초기의 중요한 성곽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쉽게도 그런 면모를 지금의 우리 시대에는 확인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곳 또한 유적 보수와 정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을 전체를 옮기는 결단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환런 지역에는 오녀산성(五女山城)이라는 또 다른 고구려 초기 유적지로 학계 일각에서는 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이 고구려를 처음으로 세운 흘승골성으로 보는 산성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산 정상 거대한 절벽에 자리잡은 이 산성에 접근할 수는 없었다.

   빙판길인데다 불과 일주일 전에 산성으로 오르던 차량이 전복해 관광객 1명이 숨지는 불상사가 있어 당국에서는 산성으로 통하는 길을 봉쇄했다고 한다.

   그런 아쉬움을 산성이 보이는 도로에서 사진 몇 컷에 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았으니, 짙은 연무에 싸인 오녀산성이 그 자태를 선명하게 드러내 주지는 않았다. 이 오녀산성은 아래서 올려다보면, 바둑판이나 도마 같지만, 공중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그 모습은 굼벵이처럼 길죽하고 그 평면도는 어딘가 모르게 경주의 천년왕성 월성(月城)을 떠올리게 한다.

   저런 험준한 곳에 첫 수도를 세운다? 저런 곳이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에는 일순간 임시 왕성으로 기능 했을지 모르지만, 왕성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이 있다.

   오녀산성을 뒤로하고 답사반은 다시 빙판길을 달려 또 다른 고구려 초기 유적이 밀집한 지안으로 향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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