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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122

<고구려유적 답사> ③ 풍납토성의 복제판 '국내성'
작성자 :
다물넷  (IP :112.156.180.104)
적성일 :
2010-02-04
조회수 :
3260


  아파트 즐비, 세계유산 등재로 관광자원화 가속

(지안=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환런(桓仁)을 떠나 빙판길과 산길을 달려 지안(集安)에 도착할 무렵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휙휙 지나는 압록강을 바라보니 유독 북한 쪽 강변으로만 강물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 너머 눈이 수북이 쌓인 북한 쪽 산자락엔 나무라곤 찾기 어렵고, 온통 밭으로 개간된 모습이 들어온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언덕길이 끝날 때쯤, 오른쪽 버스 차창 너머 압록강변 언덕 위로 육중한 흙더미 하나가 스쳐지나간다. 고구려 고분이다. 규모로 보아 왕릉급임은 분명하며, 그에 따라 고구려 어떤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아직 주인이 확실히 드러난 고구려 왕릉은 없으니, 그냥 왕릉급 무덤이라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지안 시내는 목이 따가울 정도로 매연이 심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니 매연이 나갈 곳을 찾지 못한 것이다. 순간 시계추를 고구려가 이곳에 도읍한 시절로 되돌려 봤다. 그때라고 매연이 없었을까?


<<환도산성>>
같은 분지인 신라 서울 경주만 해도, 최근 활발한 고고학적 발굴성과에 의하면, 매연 발생이 심각한 토기가마 같은 공장 시설은 도시 외곽에 위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구려가 장수왕 때 도읍을 이곳에서 평양으로 옮긴 이유로 흔히 기후 변동을 고려하지만, 혹시 오늘날의 지안이 겪는 것과 같은 공해 문제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이튿날인 24일 예정된 지안 일대 고구려 유적 본격 답사에 앞서 고구려 때 중요한 성곽 유적인 환도산성과 그 아래 산성하고분군(山城下古墳群)을 서둘러 둘러봤다. 유적 입구에는 이곳이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번듯한 안내판이 서 있었다.

  

<<환도산성에서 조망한 산성하고분군>>
세계유산인 만큼 그렇지 못한 환런의 대다수 고구려 유적지와는 달리 이곳 각종 유적은 대체로 산뜻하게 단장한 모습이다. 다만, 치장이 너무 심한 까닭에 유적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아쉬움도 컸다. 고분 1천기 가량이 밀집했다는 산성하고분군은 환도산성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장관이었다. 거기서 올망졸망한 각종 고분을 조망하니, 최근 발굴조사를 벌인 무덤과 그렇지 않은 무덤 사이에는 무엇보다 외관에서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발굴조사를 끝내고 복원이라는 이름 아래 반듯하게 다시 돌을 쌓아올린 고분이 언뜻 멋있게 보일 수도 있지만, 차라리 잡목을 온통 뒤집어쓴 무덤이 제멋이 났다. 이래서 문화유산 보존의 철칙은 없어진 원래를 찾아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상태가 더욱 나빠지는 것을 막는 데 있다는 금언이 새롭게 떠올랐다.

  

<<아파트 숲 속의 국내성>>
이튿날 들른 국내성(國內城)은 사실 우리에겐 사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사진이나 TV 화면에서 너무 자주 봤기 때문만이 아니다.

   성벽 내부로 즐비한 고층 아파트와 각종 건물, 거미줄처럼 지나는 도로. 그 사이로 겨우 명맥만 남은 성벽. 그리고 한군데서 만난 발굴현장.

   같은 처지인 서울 풍납토성의 복제판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풍납토성에 백제가 남긴 유산이 각종 건물과 개발에 짓이김을 당했듯이, 국내성 또한 이미 내부 구역 상당 부분이 이미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도시 밀집 지구에서 그나마 명맥이 남은 성벽조차도 복원이란 이름 아래 너무 많은 데다가 손을 대는 바람에 도대체 어디에서 고구려가 남긴 손길을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런 우리에게 한겨울 추위 때문에 발굴을 잠시 중단한 듯한 성벽 한쪽 발굴현장은 그나마 행운이었다. 눈대중으로 적어도 100m 정도는 노출된 듯한 발굴현장 주변 성벽 구간 대부분은 이미 발굴조사가 완료되고 복원을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원래 성벽 상황을 알 수가 없게 되었지만, 양쪽 성벽이 만나는 지점에서 드러난 치(雉)라는 방형의 성벽 돌출 시설은 고고학 문외한이 보아도 고구려 당시 원래의 흔적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국내성 치 발굴현장>>
발굴 성과가 못내 궁금했지만, 당장 그것을 풀 길이 없었다.

   국내성을 떠나 그 유명한 장군총과 광개토왕비, 태왕릉, 그리고 사신총과 오회분을 비롯한 고구려 벽화고분이 밀집한 지안 교외 서북방 지역 우산하묘구(禹山下墓區)는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핵심지역인 까닭에 깔끔하게 단장돼 있었다.

   중국당국은 이 지역을 다시 장군총ㆍ태왕릉(광개토왕비 포함)ㆍ통구고분군 등의 구역별로 세분해 적지 않은 입장료를 따로 물리고 있었다.

  

<<배총에서 본 장군총>>
변변한 농경지나 목초지도 없고, 그렇다고 눈에 띌 만한 산업시설도 없는 이곳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지안에서 고구려는 무시 못할 상품이자 산업이다.

   이런 지안 지역 외지 관광객의 95%를 한국인이 점유하는 현상을 중국 당국이 모를 리 없다. 고구려 역사가 중국의 역사임을 확인하러 이런 오지를 일부러 찾을 중국 내국인이 13억명 중 얼마나 되겠는가?
이로써 본다면, 중국 당국이 한국측의 반발을 무시하면서까지 애써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데는 흔히 알려졌듯이 이른바 동북공정이라는 정치논리보다는 어쩌면 관광수익 확보라는 경제논리가 더 크게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태왕릉>>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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