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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124

<고구려유적답사> ⑤ 玉都에서 만난 고인돌
작성자 :
다물넷  (IP :112.156.180.104)
적성일 :
2010-02-04
조회수 :
3208


  성급 지정문화재로 격상한 '고수석산석붕'

(단둥=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정확한 위치를 안다는 현지 중국인 2명을 길잡이 삼아 나선 길이었지만,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나중에 보니 이들 중국인도 정확한 지점은 모른 채, 어느 동네 어디쯤 고인돌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 산하 현급 지방도시인 슈옌현(岫岩縣) 중심을 벗어나 북쪽으로 5㎞가량을 달려 한적한 농촌 밭 사이로 난 길로 잘못 들었다가 저 멀리 야트막한 능선 중턱에서 우리가 찾아 헤맨 석붕(石棚)을 마침내 발견했다. 겨울이라 그렇지, 수풀이 우거진 여름철에 왔다면, 놓치기 십상이었다.

  


<<고수석산 석붕>>
석붕, 즉, 고인돌은 슈옌현 흥륭향(興隆鄕) 설가보자촌(薛家堡子村)이란 마을을 관통하는 흥륭가도(興隆街道)라 일컫는 지방도로 곁 야산 중턱에 있었다. 도로에서 내려 아카시아 나무 우거진 곳을 뚫고서 200m가량 오른 곳에 고인돌은 자리잡고 있었다. 아래서 볼 때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더 높은 지점에서 고인돌을 내려다보니 왜 이곳에 이런 거석(巨石) 유물이 자리를 잡았는지 알만 했다. 고인돌은 말 그대로 사해를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인 지점에 떡 하니 버티고 선 것이다.

   그 모양을 보니 마치 한창 핀 버섯 같다. 덮개돌은 둥글고, 그것을 받친 넓적한 기둥돌은 양쪽에 세웠으며, 뒤쪽에도 판돌로 막았다. 고조선학회에서 만든 답사자료집에 수록된 이 고인돌 사진을 보면, 기둥돌 중 뒤쪽 막음돌은 왼쪽 절반쯤이 깨져 뚫린 모습이지만, 눈앞에 선 이 고인돌은 완전히 막혀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깨져 나간 곳에는 시멘트를 발라 놓았다.

  

<<고수석산 석붕>>
대문에 해당하는 앞쪽은 확 틘 모습이다. 답사자료집을 보니, 이 앞쪽 틘 곳이 남쪽이라 한다. 고인돌이 내려다보는 들판 사이로 대양하(大洋河)라는 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인 간파하(干巴河)가 흐르거니와, 강물 흐름과 고인돌 전면은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고인돌을 만든다면, 산 아래를 향하는 방향으로 전면을 삼겠지만, 이 고인돌은 이상하게도 강 흐름과 나란한 방향으로 남-북 중심축을 형성한 것이다. 이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은 지형보다는 동서남북이라는 절대 방향을 더 중시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답사단에서 유일한 고인돌 전문가로서 수원 숙지고 교사인 우장문 박사는 "랴오닝(遼東) 지역 고인돌은 대부분 이런 방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고수석산 석붕>>
바닥에서 지붕돌까지는 높은 편이어서 앞문으로 웬만한 성인이면 머리를 숙이지 않고도 고인돌 안쪽을 들락거릴 수 있었다. 중국측 연구자의 이 고인돌에 대한 실측 자료를 보니, 북쪽 막음돌이 석회암인 점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 석재는 대부분 천연 화강암을 가공해 다듬어 만들었으며, 동ㆍ서 양쪽 받침돌은 안쪽으로 약 4도가량 기울어졌다.

   우장문 박사는 안쪽으로 기운 받침돌을 가리키면서 "이처럼 약간 안쪽으로 (받침돌을) 기울여 쌓는 방식이 (고인돌의) 안정성을 담보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무덤방은 길이 2.2m에 너비 1.5m이며, 정확한 높이는 1.7m라 한다. 덮개돌은 타원형으로, 길이 5.1m에 너비 3~4m이며 두께는 0.2~0.3m라고 한다.

  

<<고수석산 석붕과 우장문 박사(오른쪽)>>
답사자료집에 의하면 이 고인돌은 1962년 4월12일 시급(市級) 문물보호단위(우리의 지방지정문화재에 해당)로 지정됐다고 하고, 실제 이 고인돌 전면에는 이런 내용을 새긴 안내판이 발견되긴 했지만, 그 바로 곁에는 최근에 새로 세운 석재 안내판에는 2000년 10월31일에 성급(省級) 문물보호단위가 되었다는 내용이 보였다. 약 40년 만에 그것이 자리한 동네, 혹은 산 이름을 따서 '흥륭대석붕'(興隆大石棚), 혹은 고수석산석붕(姑嫂石山石棚)이라고도 일컫는 이 고인돌은 '신분'이 격상한 셈이다.

   이 고인돌에서 산을 내려가 400m 정도 떨어진 들판 밭 한가운데는 또 다른 작은 고인돌 하나가 있다. 다른 일정에 쫓겨 이 작은 고인돌을 직접 답사하지는 못했지만, 우장문 박사에 의하면 요동 지역 고인돌은 이처럼 큰 고인돌과 작은 고인돌이 세트를 이루는 일이 많다고 한다.

  

<<고수석산 석붕>>
중국에서는 옥(玉) 산지로 유명해 옥도(玉都), 즉, 옥의 서울이라 일컫는 슈옌에는 이곳 말고도 모두 24곳에 걸친 고인돌이 있지만, 한곳밖에 찾지 못했다. 이곳 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약 210기에 달하는 고인돌 유적이 발견, 보고됐다.

   물론 이 정도 수치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유역이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까지 등재된 강화ㆍ화순ㆍ고창 지역 고인돌 수치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들 고인돌은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가 선사시대에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간주되곤 한다.

   혹자는 고인돌을 고조선 문화와 연결하기도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검증이 되지 않은 논란으로만 남아있다.

  

<<고수석산 석붕>>
그렇다면 흥륭대석붕과 같은 거대한 고인돌은 기능이 무엇이었을까? 무덤이었을까?
우장문 박사는 "이처럼 큰 것은 제단 정도로 보는 편이 무난할 것이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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