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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140

“이순신은 리더십 지닌 지도자의 전형”
작성자 :
다물넷  (IP :112.156.180.104)
적성일 :
2010-04-24
조회수 :
2969



“이순신은 리더십 지닌 지도자의 전형”




세계일보






'난중일기' 완역한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노승석 교수


"이순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수일 뿐 아니라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의 전형이라는 게 보다 선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쓴 '난중일기'를 완역한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노승석 교수가 표현한 말이다. 노 교수는 수년에 걸친 작업으로 그간 난중일기 가운데 오독(誤讀)되고 빠진 부분을 갖가지 문헌의 고증을 통해 완역, 민음사를 통해 책으로 엮어냈다. 난중일기라는 용어도 조선 후기 유득공이 붙인 이름이며, 특히 을미년 일기(1595년)는 노 교수가 처음 밝힌 내용이다.










◇난중일기를 완역한 노승석 교수가 어려웠던 해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13척으로 왜선 300척을 물리친 명량해전의 생생한 전투 장면이 완역본에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대장선이 왜선 130여척에 의해 몇 겹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먼저 자기 배의 군사들에게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더욱 심력을 다해 적을 쏘아라'라고 북돋우는 한편, 다른 장수들이 달아나려고 하는 기미를 보이자 '안위(安衛)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라고 말하니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진했고, 또 김응함을 불러, '너는 중군장이 되어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형세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해 주마'라고 했습니다. 이순신은 지휘선을 타고 홀로 적진 속으로 들어가면서 포탄과 화살을 비바람같이 쏘아대며 공격령을 내렸지만, 부하 장수들은 겁을 먹고 오히려 5리쯤 후진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이런 순간에도 침착하고 슬기롭게 부하를 지휘하고 통제함으로써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순신은 강함과 부드러움,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부릴 줄 아는 장수였어요.('정유년 일기' 9월 16일자 축약)"


장군이 행주대첩을 이끈 도원수 권율의 실책을 지적하는 부분도 새로 밝혀졌다. "기존 '난중일기'에서는 전쟁 중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데 권율과 갈등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 밝혀진 을미일기 4월 30일자에는 '원수(권율)가 근거 없이 망령되게 고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 반드시 실수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원수의 지위에 눌러앉을 수 있는가. 괴이하다'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한 내용이 있습니다."










◇'정유일기Ⅰ' 5월 21일자 일기로, 당시 부패하고어지러웠던 정치 현실을 개탄한 내용이 적혀있다.



노 교수가 새로 밝혀낸 부분에서도 이순신은 원균에게 극단적인 적대감을 나타냈다. 노 교수는 "이순신은 (전령이) 원흉(元兇, 원균)의 답서를 가져와 바치니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기망하는 말들은 무엇으로도 형상하기 어려우니 원흉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을미일기' 11월 1일자)"고 적었다"고 했다.


장군은 당시 조정의 어지러운 정치 현실에 대해 "배설(裵楔)이 권세 있는 집안에 아첨이나 하여 감당치 못할 지위에까지 올라가서 국가의 일을 크게 그르쳤건만, 조정은 이를 살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정유일기Ⅱ' 8월 12일자) 우수사 김억추(金億秋)는 겨우 만호(萬戶)에만 적합하고 곤임(장수)을 맡길 수 없는데, 좌의정 김응남(金應南)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러고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정유일기 9월 8일자)"라고 썼다.


이순신을 연모했다는 여인들이 난중일기에도 여럿 등장한다. 노 교수가 새로 밝힌 내용이다. "전남 영광에서 한양 기생 내산월(萊山月)을 만나 술을 마셨다.(병신일기 9월 11일자)" "종 여진(女眞)과 시간을 함께 했다.(병신일기 9월 12, 14, 15일자)" 내산월은 한양에 살던 명기로 충무공이 거북선을 만들 때 금괴를 바쳐 경비 조달에 도움을 준 여인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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