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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대한민족통사 통합판

  민족사학과 한민족사란?
민족사학

우리나라의 역사는 지난 수 백년을 지배했던 사대주의와 일제의 식민통치를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중국 중심의 역사관, 스스로를 낮추어 보는 자괴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기술되어 왔다.

이로써 우리는 교육과 경험을 통해 형성해 가는 가치관과 정체성에서 역사교육을 통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긍심, 정의구현, 희생봉사, 애국애족 등의 기본정신은 물론 패기와 높은 기상, 민족의 영웅을 높이 사고 존경하는 풍토 등 긍정적인 요소는 부족하고 몰염치, 보신주의, 사회정의의 외면 등 부정적인 요소가 키워진 왜곡된 교육을 받아왔다.

이런 부작용을 낳은 첫번째는 조선시대를 지배한 사대주의 사관이었으며, 이를 고착화 한 것은 일제 식민 기간 중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지배의 합리화를 위한 우리 역사의 축소작업과 이에 부역한 자들의 광복후 역사학계 장악이었다.

일제기간 중 식민사학에 반발하여 단재 신채호, 백암 박은식 선생 등을 통해 정립된 민족사학은 정인보, 장도빈, 문일평, 안재홍, 황의돈 등으로 이어지며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버티며 꽃을 피워왔다. 그러나 식민사학의 잔재가 주류 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동안 민족사학자들은 재야사학이라는 꼬리표를 마치 주홍글씨처럼 달고 활동해야만 했다.

그러나 근래 발달된 경제와 기술 등으로 그간 땅속에만 묻혀 있던 수많은 유물들이 발굴되고 유전자 분석 등의 기법이 인류의 발생과 역사의 검증에도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그간 민족사학이라 칭하던 우리의 올바른 역사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반대로 바로 이런 점이 중국과 일본 등의 역사 왜곡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어 한중일 3국은 지금 치열한 역사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사

한민족사는 바로 한민족의 입장에서, 한민족을 중심에 두고 , 대한민국이라는 현대 국가의 역사가 아닌 한민족이라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동북아의 역사를 재조명한 결과를 말한다.

이렇게 바라본 역사를 통해서만 고구려와 발해가 우리 역사가 되고,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 중.일 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대응할 수 있다.

또한 한민족사를 통해 바라본 우리 역사의 흐름으로만 대한민국과 북한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며, 재중교포, 재러교포, 재일교포 등 세계 각국의 교포들을 한민족의 일원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근래 다문화라 일컬어지는 귀화 외국인 및 2세 자녀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보다 발전적이고 긍정적으로 정의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외에도 저 멀리 바이칼호수나 히말라야 산맥의 오지, 터키나 인도 또는 중앙아시아의 어느 박물관에서 발견되는 우리와 같은 언어, 풍습, 유물, 설화 등에 대해 자연스러운 설명이 가능하여 기존의 사학이 갖는 대부분의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다.

한민족사가 바라보는 역사의 관점은 마치 유태인이 바라보는 역사의 관점과도 같다. 즉 유태인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보지 않고 구약성서를 기준으로 고대사를 그리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역사속에 활약했던 유태민족을 아울러 유태의 자손들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한민족사란 어느 특정 국가가 아닌 '한민족' 구성원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시작을 보는 시각의 차이
민족사학의 주장

•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유목민족 집단이 동진하여 배달국을 열고, 토착세력인 고인돌 집단과 결합하여 세력을 이루다 은(殷)을 비롯한 동이족 국가를 여럿 이루었으며, 또한 정통의 단군조선을 개국

• 삼조선(三朝鮮 다르게는 三韓)으로 나뉘어 통치되던 단군조선이 차례로 멸망하며 대부여로 또 북부여 및 후기 삼한으로 이어졌다.

• 북부여의 쇠락과 함께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이 건국되었다.(기원 전후)

• 고구려와 백제는 서기 4~5세기경 중국대륙의 동부와 북부에 진출하며(송서, 양서, 통전, 진서, 자치통감, 삼국사기, 북제서, 남제서 등) 세력을 떨쳤으며, 백제와 가야, 신라는 왜(倭)에도 활발히 진출하였다.

기존사학의 주장

• 단군조선은 신화적이며 검증이 안되어 역사로 보기 어렵다.

• 은(殷)나라에서 온 기자의 기자조선(기원전 10세기)이 우리 최초의 국가(식민지로 시작)

• 기자조선은 다시 한(漢)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에게 멸망하고 위만조선 건국(다시 식민지로 이어짐)

• 위만조선은 한나라에게 멸망하고 한나라는 한반도 북부 등에 4군을 설치하여 식민지배 함(한나라에 편입되어 나라가 없음)

• 우리 나라 정통의 국가로 성립된 고구려,백제,신라는 낙랑의 영향으로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다가 낙랑의 멸망 후인 4세기부터 나라의 기틀을 갖추었다(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 기술된 삼국의 건국 연대 부정, 이전의 200~300여년 간의 왕조 기록은 과장된 것으로 주장)

• 위의 논리는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 대한민족통사 통합판
  • 부여·백제(夫餘·百濟)
  • 부여사(夫餘史)
  • 대쥬신제국사(大朝鮮帝國史)
  • 이순신(李舜臣)
  • 단군조선(檀君朝鮮)
  • 치우천황 (蚩尤天皇)
  • 한국105대천황존영집 (韓國105代天皇尊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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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ngchl 180.69.134.149 2013-03-15

    그거 '경솔'히 판단하기 힘들 것 긑은데요, (성향을 불문하고) 신문, TV 등에서 '제대로 된 사람들', '제대로 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 대해서는 악의적으로 외면하고, '아주 그런 것'만... '편파보도'를 해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닌가,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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