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시조 단군의 어린 시절 이야기
우리 한민족의 조상들은 역사를 창조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벌써 우리의 소리말을 기록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신시(神市) 배달한국 커밝한[居發桓] 천황의 명령을 받고 만든 신치 혁덕의 녹도문을 시작으로 하여 을보륵(乙普勒) 박사의 가림토 등 수차례에 걸쳐 개량과 재창조를 거듭하며 현대 한글로 완성되어 온 것이다. 그러면 신치의 녹도문이나 가림토는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나라 옛글의 흔적은 뜻밖에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찾아낼 수 있다.
'순화각첩'의 창힐글자비 |
'서안시 비림'의 창힐글자비 |
'찰힐사당'의 새발자국 글자비 |
'해동역대명가 필보' '영변지' 신지글자 |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원 언어학 연구소’에서 실장으로 우리나라의 고대글자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김인호(金仁鎬)씨는 그의 논문 “우리나라 고대글자 관계의 역사유물과 자료들에 대한 고찰”에서 몇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발표했는데 아래는 그의 연구논문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 것이다.
우선 제일 중요하게 눈에 띄는 것으로는 해동죽지(海東竹枝)나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에 소개되어 있다는 16자의
신치 글자들인데, 4면에 걸쳐서 기록되어 있는 것을 ‘영변지’가 다시 인용하면서 신치전에 소개된 ‘고조선신지자(古朝鮮神誌字)’라고
해설을 달아놓았다는 것이다.
아래에 보이는 그림들이 바로 신치 글자 16자이다.
김인호의 논문은 계속하여 독학서법진결전(獨學書法眞訣全)에 소개된 신치글자로 창힐전(倉?篆)의 11자, 고금역대법첩(古今歷代法帖)에 소개된 창힐서(倉?書) 9자, 그리고 순화각첩(淳化閣帖, A.D 992)에 소개된 고창힐서(古蒼?書) 28자 등도 함께 소개하면서 이상의 창힐글자들은 만주의 요령성 여대시 백람자 윤가촌의 무덤들에서 나온 유물들에 의하여 다시 확인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